저소득층이 빈곤을 탈출하고 자립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장애, 고령, 경력 단절, 기술 부족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이들이 일반적인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반복적인 실직이나 장시간의 실업 상태는 자신감 상실과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며, 구직 의지 자체를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다. 사회적 기업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조직으로, 수익을 내되 이윤보다 고용 창출과 사회문제 해결에 목적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저소득층, 장애인, 경력단절 여성 등 고용 취약계층에게 일자리와 훈련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단순한 복지 지원을 넘어 자립과 자존의 기반을 마련해준다. 이 글에서는 한국, 영국, 독일의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을 중심으로 저소득층 일자리 지원 구조와 그 실효성을 비교 분석한다.
한국 – 제도적 지원은 있으나 지속성과 시장성과의 과제
한국은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제정하며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이후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제도, 일자리창출 지원사업,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운영, 재정지원형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특히 저소득층, 경력단절 여성, 고령자, 북한이탈주민 등을 우선 채용하면 정부가 인건비, 사업개발비, 사회보험료 등을 일정 기간 보조한다.
실제로 많은 사회적 기업들이 지역사회 기반의 소규모 서비스업, 돌봄, 마을기업 형태로 운영되며, 저소득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사회참여의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2025년 기준, 전국 등록 사회적 기업은 4,000곳을 넘었고, 고용 인원의 약 30%가 취약계층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문제는 지원 종료 이후의 지속 가능성이다. 정부 보조에 의존하던 기업들이 자립에 실패하면서 폐업하거나 고용을 줄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한 일부 기업은 사회적 목적보다 정부 지원금 확보에 초점을 맞추는 구조적 왜곡도 발생한다. 결국 한국은 제도적 틀은 잘 마련되어 있으나, 시장성과 지속성을 확보하는 ‘두 번째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국 –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투자 시장의 결합
영국은 세계에서 사회적 기업이 가장 활발히 운영되는 국가 중 하나로, 2002년 ‘사회적 기업 전략(Social Enterprise Strategy)’을 발표하며 정부 차원의 장기 비전을 제시했다. 이후 사회적 투자(Social Investment) 개념을 도입하여, 정부가 직접 자금을 지원하기보다는 사회성과에 기반한 민간 자금 유입 구조를 마련했다. 대표적으로 빅소사이어티 캐피탈(Big Society Capital)이라는 사회적 투자 은행이 사회적 기업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영국은 사회적 기업이 단순 고용 제공을 넘어서 교육, 환경, 지역 활성화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유도하며, 이에 따라 저소득층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도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 청소년을 훈련시켜 요식업계에 진출시키는 프로그램, 노숙인 자활을 위한 커피 전문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모델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영국은 공공부문이 사회적 기업 제품과 서비스를 우선 구매하도록 법제화하여, 시장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생태계는 정부 지원 없이도 저소득층 고용이 지속 가능하도록 설계된 선순환 구조를 가능하게 했다.
독일 – 지역 기반 협동조합과 직업 통합 기업 중심의 안정적 고용
독일은 사회적 기업이라는 용어보다는 ‘사회적경제기업’ 혹은 ‘직업 통합기업(Inklusionsbetrieb)’이라는 개념이 주를 이룬다. 특히 장애인, 장기 실직자, 저학력자, 이민자 등 노동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을 위해 설계된 고용 통합형 기업 모델이 국가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일반 기업보다 높은 인건비 보조, 세제 혜택, 고용 유지 보조금 등을 지원받는다.
또한 독일은 지역 사회와 긴밀하게 연계된 협동조합 형태의 고용 창출 모델을 활성화해왔다. 이들은 공동체 내에서 생산과 소비를 연계하면서 단순 노동을 넘어 지역 활성화와 공동체 복원이라는 이중 효과를 창출한다. 예를 들어 농촌 지역에서는 친환경 농업과 유통을 결합한 사회적 기업이, 도시에서는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공방과 교육기업이 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독일의 강점은 복지와 노동 정책의 유기적 연계다. 사회적 기업은 단지 고용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 수급자와 노동시장 간의 ‘중간 단계’를 제공하며, 이들이 일반 시장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이행형 복지모델(Transition Welfare Model)을 실현한다. 이는 저소득층이 복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사회적 기업은 ‘고용+복지+지역’을 연결하는 실천적 모델
사회적 기업은 단순히 기업이 아닌,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노동시장으로 연결하는 사회적 장치다. 한국은 제도적으로 빠르게 사회적 기업 생태계를 성장시켰지만, 자립 기반과 민간 투자 유입이 부족해 성장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 반면 영국은 사회적 투자와 공공구매를 연계한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을 구축했고, 독일은 직업 통합과 지역 기반 협동조합을 통해 안정적인 고용과 자립을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앞으로 사회적 기업은 단순 고용 제공을 넘어, 복지와 경제,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통합 플랫폼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정부 지원 외에도 민간의 사회적 자본 유입, 공공부문의 전략적 소비, 제도 간 연계성 강화가 필수적이다.
진정한 복지는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며, 사회적 기업은 그 복지의 실천적 공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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