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주거 문제는 단순한 부동산 이슈를 넘어 사회 복지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요즘 도시화, 고령화, 1인 가구 증가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 제도가 중요한 정책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가운데 프랑스와 한국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주거복지를 발전시켜 왔다. 프랑스는 오랜 복지국가 전통을 바탕으로, 주거를 인간의 기본 권리로 간주하며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최근에서야 주거를 복지의 일부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여전히 부동산 시장 중심의 시각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와 한국은 모두 공공임대주택, 주거수당, 세입자 보호 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접근 방식과 제도 설계, 행정 실행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는 보편적 주거권 실현을 목표로 삼고 있는 반면, 한국은 선별적 지원 중심의 주거 복지에 머무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두 나라의 주거복지 제도를 구조적으로 비교하면서, 공공임대주택 정책, 주거급여 제도, 제도 운용 방식, 세입자 보호 등의 측면에서 구체적인 차이와 시사점을 살펴본다.
공공임대주택 정책 – ‘보편 공급’과 ‘목표 공급’의 차이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영구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 행복주택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입주 대상은 대부분 일정 기준 이하의 소득과 자산을 보유한 계층으로 제한되며, 공급량은 국토부 주도의 중장기 공급 계획에 따라 조절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공급 부족과 낙후된 주거환경, 지역 불균형 문제로 인해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또한 대기 기간이 길고, 선발 경쟁이 치열해 실수요자가 제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여전히 ‘임대주택 = 빈곤층’이라는 사회적 인식도 존재하여 입주에 따른 낙인 효과도 문제가 되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HLM(Habitation à Loyer Modéré, 저렴한 임대주택) 제도를 중심으로 공공임대주택을 보편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HLM은 전국에 약 500만 채 이상이 공급되어 있으며, 프랑스 전체 주택의 17% 이상이 공공임대주택일 만큼 광범위하다. 입주 자격은 소득 기준이 있으나, 상대적으로 넓은 범위를 포괄하며, 중산층도 포함된다. 이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만들고, ‘주거의 계층화’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임대주택 건설과 관리를 담당함으로써 지역 맞춤형 공급이 가능하다.
프랑스는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건축 디자인과 관리 수준도 민간 아파트 못지않게 유지한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임대주택을 ‘빈곤층 전용’으로 보는 시각이 강해, 정책의 사회적 수용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주거급여·주거수당 제도 – 자동화된 프랑스, 신청 중심의 한국
주거비 보조 역시 양국 주거복지 정책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한국은 주거급여 제도를 통해 저소득층의 월세 일부를 현금으로 보조하고 있으며, 2025년 기준 기준임대료가 지역·가구 규모에 따라 세분화되어 운영된다. 이 제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하위 급여로 분류되며, 수급 자격은 소득 인정액이 중위소득 47% 이하인 가구로 제한된다. 신청은 주민센터나 복지로 웹사이트를 통해 이루어지며, 심사 과정에서 재산과 소득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지원을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심리적 부담으로 인해 신청을 기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반면 프랑스는 APL(Aide Personnalisée au Logement)이라는 주거수당 제도를 통해 임차인에게 직접 월세 보조금을 지급한다. APL은 단지 저소득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초년생, 대학생, 청년층, 중산층 가구 등도 폭넓게 대상에 포함되며, 수급자는 약 600만 가구에 달한다. 프랑스는 APL 지급을 세입자 등록 시 자동 적용되도록 시스템화하여, 별도 신청 없이도 일정 조건만 충족하면 자동으로 보조금이 지급된다. 또한 임대인에게 직접 지급하는 방식도 가능하여, 월세 체납이나 주거불안정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이처럼 프랑스는 주거비 지원을 ‘특별한 사람에게 주는 혜택’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한 기본 지원’으로 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복지 수급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제도는 존재하되 실제 체감하는 계층은 소수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입자 권리 보호 – 공공의 개입 수준 차이
세입자 보호는 주거 복지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한국의 경우 전·월세 계약 구조가 민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세입자 보호를 위한 장치는 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 상한제 등이 있으나,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년 계약 후 1회 연장 가능이라는 제한, 임대인 측의 허위 계약 거절 사례, 신고가 회피 등의 문제가 나타나며, 실거주 세입자의 불안정성이 여전하다. 깡통전세, 보증금 미반환, 급격한 전셋값 인상 등으로 인해 저소득층이 심각한 주거 위기를 겪는 사례도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는 임대차 계약이 법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규제되어 있으며, 세입자의 권리를 최우선적으로 보호한다. 예를 들어 임대인은 계약 만료 시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는 퇴거를 요구할 수 없으며, 임대료 인상도 국가 또는 지방정부가 정한 상한선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겨울철에는 법적으로 퇴거 조치가 금지되는 동절기 퇴거 금지법(Trêve hivernale)이 존재하여, 주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는 세입자와 임대인의 관계를 단순한 계약이 아닌 사회적 관계로 간주하며, 공공이 적극 개입하여 분쟁을 조정하고, 세입자의 안정적인 거주를 최우선으로 보장한다. 이에 반해 한국은 시장 중심의 주거 구조에서 세입자 권리 보호가 제도적으로 부족하며, 법적 장치가 있어도 실제 이행력이 약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주거복지의 철학 차이가 제도 설계를 바꾼다
프랑스와 한국의 주거복지 제도를 비교해 보면, 단순한 정책 수준을 넘어 ‘주거에 대한 국가 철학의 차이’가 제도의 모든 측면에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는 주거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정의하며, 국가와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보편적 주거안정을 실현하고자 한다. 반면 한국은 주거를 여전히 개인의 책임 혹은 시장 자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고, 공공임대와 주거급여 등도 선별적 복지의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공임대의 공급 방식, 주거비 지원의 접근성, 세입자 권리 보호 제도의 실효성까지 모두 제도적 차이는 ‘사회가 주거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 한국이 앞으로 주거를 ‘복지’로 인식하고, 누구도 거리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보편주의적 주거복지 철학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단지 제도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주거 불안정에 책임을 지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 진정한 주거복지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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